매일 집에 있다보면 집 밖을 나간다는것이 참 힘든일이다. 젊을때는 집에서 나와 거리를 걷는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을 벗어나는 일 조차도 큰 결심이 필요하다.
집밖을 나서기전 아침을 해결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과일 칸에 있는 빵과 눈이 마주쳤다. 곰팜이 피지 말라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는데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차갑게 식은 곡물이 들어간 모닝빵과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우유로 아침을 때웠다. 이럴때는 먹었다는 표현보다는 때웠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거 같다. 음식에 따뜻함과 정성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먹었다라는 표현은 과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한끼를 그냥 때웠다라는 것이 그 행동에 걸맞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침을 때우고 산책에 적절한 옷을 골라 입었다. 집 앞에 있는 호수 공원을 한바퀴 도는것이 나의 요즘 매일의 산책 코스다. 이 동네 대부분 사람들의 산책 코스이기도 하다. 이 동네에 여기 말고 마땅히 걸을만한 곳이 있는것도 아니다. 다들 왜 그렇게 개를 끌고 나오는지 모르겠다. 저번에 신책 중 몇번 사나운 개와 마주치면서 놀란 기억이 있어. 개와 지나칠때면 약간 긴장이 된다. 개 주인도 알게 모르게 약간 긴장하는 눈치다. 참 웃긴게 개 주인이나 나나 다들 개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개가 주인이고 사람이 어쩌면 개 주인을 산책시키는 집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개가 밉다. 이렇게 개를 숭배하는 세상으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도 별로 탐탁치 않다. 공원에 핀 꽃들과 나무들을 바라보고 새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앞에 개가 주인과 산책하고 있는 모습에 눈이 가면 나의 집중이 깨어진다. 더이상 꽃들과 나무과 눈에 들어오지 않고 개와 주인 사이를 연결해주는 끈에 길이를 계산하고 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 끈에 길이가 닿을 수 없는 공간을 파악하고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겠다고 생각하는 나를 보고 있으면 자괴감이 든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개를 어떻게 피해갈까라는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진화가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수많은 시간동안 진화하지 않은 개가 결국은 인간 위에 있는 사실을 보며, 과학이 밝힌 수많은 인간이라는 종이 어떻게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실도 별로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느끼는 또다른 않 좋은 점은 소화가 잘 안된다는 것이다. 젊을때는 라면을 먹고 자도 그 다음날 일어나는것이 아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랬다가는 몇일동안 불편한 속을 부여잡고 힘들어해야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음식을 먹을때보다 항상 그 음식을 먹고 난 뒤를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젊을때는 어떤 음식을 먹던 그 뒤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눈 앞의 음식에 맛에 더 탐닉하게 된다. 삶의 경험과 시간이 쌓일수록 점점 미래를 대비하게 된다. 아는게 많을수록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예상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들이 가져올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자꾸 나를 주저하게 한다. 이럴때는 차라리 모르는것이 도움이 되는것 같다. 어차피 사람은 어떤 일이든 감담해낸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다들 자기 몫을 감당하고 살아간다. 그 이상의 일이 온다면 그냥 흘러넘치는거다. 물이 둑을 만나면 넘쳐 흐르듯이 그렇게 다들 할 수 있는 만큼 감당하고 나머지는 그냥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내버려 두는거다. 걱정이 많으면 시도를 할 수 없고, 젊음은 경험이 부족하니 일단 무엇이든 도전하고 본다. 그리고 그 도전을 통해서 그들도 하나씩 배워가면서 결국 점점 주저하는 인간형으로 간다. 체력과 에너지가 영원한 것이 아니니까. 모두들 그렇게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사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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